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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 제4차 전역(방어) : 1951. 1.27~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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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반상황

중공군은 서울을 점령한 이후 남쪽으로 진격을 멈추고 주력은 고양, 의정부, 동두천, 가평, 금화, 금성 일대에서 휴식 및 정비를 하고, 일부병력으로 수원, 김량장리, 이천, 용두리, 횡성, 하안흥리 및 평창 북쪽 지역에 방어선을 구축하여 주력을 엄호하고 유엔군의 공세활동을 대처하였다. 이는 중공군사령관 팽덕회의 전장상황에 대한 인식과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그는 유엔군이 중공군을 유인하여 포위격멸의 의도를 가지고 있고 또한 중공군의 적절한 휴식과 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한편, 중공군이 절제력을 잃고 계속 남쪽으로 공세를 했다면 전쟁 양상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는 중공군의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2. 유엔군의 의도 및 배치
유엔군은 중공군을 낙동강까지 유인하려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중공군의 피로누적과 악화된 보급상황을 이용하여 중공군을 밀어내고 서울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를 5개 군단의 16개 사단, 3개 여단, 1개 공정연대 및 포병, 항공기, 전차 등을 집결시킨 유엔군은 주공을 서부전선, 조공을 동부전선으로 결정하여 축차공격과 횡대대형 병진으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 서부전선
    미 제1,9군단의 총 6개 사단과 3개 여단은 주공으로 남한강 서쪽으로 야목리로부터 여주에 이르는 68km의 정면에서 서울을 향해 공격하였다.
  • 동부전선
    미 제10군단은 미 제2사단, 제187공정연대, 한국군 8,5사단을 제1제대로 편성하고, 여주에서 평창에 이르는 총 67km 구간에서 전개하여 횡성, 양덕원리, 청평천 방향으로 공격하였으며, 미 제7사단은 예비대로 제천 일대에 위치하였다.

다음은 중공군의 전역의도 및 배치, 전역경과 및 결과를 이어 포스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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