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6(금)역사단편229. 북벌론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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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판단과 결단은 어려운 것이다.
상황판단을 위한 합당한 정보와
그 정보를 통해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을 해낸 사람들은 영웅으로 남았다.
어찌보면,
백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한 영웅이
우리시대에 현신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욕심 아닐까?
또한 영웅이라는것 역시 평온한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웅은 독재자 일 수 밖에 없다.
다수에겐 그런 판단과 결단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역사를 보면
대중들이 선동가들의 혓바닥에 놀아나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달콤하고 짜릿하기 때문이다.
이제 지루한 역사의 이야기를 읽을 시간이다.
서경천도와 북벌을 주장했던 묘청은 요물로 내쳐졌고
진압군 대장인 김부식은 역사를 지배했다.
역사는 그런것이다.
당대 고려사회는 진취적인 세력이 아니라
안주하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들이 지배했다.
그러니, 서경으로의 천도를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秘訣과 風水說(비결과 풍수설)로 平壤 遷都를 主(평양천도를 주)함은
妙淸(묘청)으로서 始(시)함이 아니니, 이로써 妙淸(묘청)을 妖賊(요적)이라 함은
너무 抑屈한 判決(억굴한 판결)이다.
妙淸(묘청)이 風伯과 雨師(풍백과 우사)를 能히 指揮(능히 지휘)한다 이르며,
大同江底(대동강저)에 油餠(유병)을 沈(침)하고 神龍의 吐涎(토연)이라 하여
百宮의 表賀를 請(백궁의 표하를 청)함이 어찌 妖賊(요적)의 일이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일은 高麗 以前(고려이전) 常有(상유)한 일이니,
古代(고대)에 宗敎上·政治上 人物(종교상, 정치상 인물)들이
매양 茫然(망연)한 天神을 託(천신을 탁)하여 群衆을 籠絡(군중을 농락)하던 것이라.
이것으로 妙淸(묘청)을 罪(죄)함도 또한 公言(공언)이 아닐 것이다.
< 출처: 朝鮮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
始(시): 시작하다, 먼저
抑屈(억굴): 눌러서 한쪽으로 휘다. 부당하다
風伯과 雨師(풍백과 우사): 바람과 비를 다스리는 신
사서에 따르면 바람과 비의 신에게 제사하는 것을 맡은
관리에 해당한다. 그에 해당하는 권력이 있는 관직이다.
油餠(유병): 기름떡
沈(침): 가라앉히다. 숨기다
吐涎(토연): 뱉은 침
表賀(표하): 축하하다.
常有(상유): 항상 있다.
茫然(망연): 분명치 않음
託(탁): 핑계대다, 의지하다
籠絡(농락): 새장과 고삐, 남을 교묘하게 휘어잡아 제 마음대로 놀리거나 이용함.
(옮기면)
그러나 비밀스러운 구결과 풍수설로 평양천도를 주장한것은
묘청 때부터 시작한것이 아니니,
이런 행위로 묘청을 괴이한 반역자라 함은 너무 부당한 판결이다.
묘청이 풍백과 우사를 능히 지휘한다 이르며,
대동강바닥에 기름떡을 가라앉힌후에 신룡이 토해낸 것이라 하면서
조정과 임금의 축하를 청함이 어찌 요적의 일이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일은 고려이전에 항상 있었던 일이니,
고대에 종교상, 정치상 인물들이
매양 분명치 않은 천신을 핑계대고 군중을 농락하던 것이라.
이것으로 묘청을 탓하는 것도 또한 공평한 것이 아닐 것이다.
< 출처: 조선역사상일천년래 제일대사건>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잠깐 살펴보자.
묘청(妙淸)은 서경(西京)의 승려로 뒤에 정심(淨心)이라 개명하였다.
인종(仁宗) 6년(1128)에 일자(日者) 백수한(白壽翰)이
검교소감(檢校少監)으로서 서경의 분사(分司)에 있으면서 묘청을 스승이라 불렀다.
두 사람은 음양가의 비술(秘術)에 의탁하여 뭇 사람을 현혹시켰다.
정지상(鄭知常) 또한 서경 사람이라 그 말을 깊이 믿고 이르기를,
“개경은 이미 왕업이 쇠하며 궁궐은 모두 불타버리고 남은 것이 없지만
서경은 왕기(王氣)가 있으니 마땅히 〈임금이〉 이어(移御)하여
상경(上京)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중략>
마침내 입이 닳도록 서로 함께 떠벌렸다.
<중략>
이에 여러 관리들에게 서명할 것을 두루 요청하였으나
평장사(平章事) 김부식(金富軾), 참지정사(參知政事) 임원애(任元敱),
승선(承宣) 이지저(李之氐)만은 서명하지 않았다.
글을 올려 아뢰니, 왕이 비록 의심이 가기는 했지만
뭇 사람이 힘써 말하므로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출처: 반역(叛逆) 묘청, 고려사 열전]
춘추필법을 따르는 유학자들의 세계관에서는
반란을 일으킨 신하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김부식일파가 역사를 지배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구절도 적혀있다.
그들만이 정당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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