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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22(월)역사단편105淵蓋蘇文[연개소문]의 死年[사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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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jew
70
2 months agoSteemit3 min read

현대어에 친숙한 문구는 그대로 두고
한문이 많이 포함된 구절만 현대어로 옮긴다.

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위키등>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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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속 연남생>

그런즉 연개소문은 이와 같이
당의 국부인 당 태종을 죽인 구적(仇敵:唐國[당국] 君臣[군신]의
不共戴天[불공대천]의 仇敵[구적] ─ 原註[원주])이니,
불공대천(不共戴天)의 구적에 대하여
과(戈)를 선(旋)치 않고 투사(鬪死)함은
공구씨의 정한 황황한 예법이요,
이 예법을 잊는 자는 금수라 하는것이니,
만일 연개소문의 생전에,
당인이 고구려에 대한 복수군을 대발한때가 없으면,
이는 거국이 명명히 금수화됨을 자백함이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구적(仇敵): 원수
不共戴天[불공대천]: 같은 하늘아래 살 수 없다.
과(戈): 전쟁, 싸움
선(旋): 돌아가다
투사(鬪死): 싸우다 죽음
황황하다: 아름답다.
금수(禽獸): 짐승

(옮기면)
연개소문은 이와 같이
당나라의 아버지인 당 태종을 죽인 원수
(당나라 군주와 신하들의 용납할 수 없는 원주 ─ 原註[원주])이니,
이 원수에 대하여 전쟁을 통해서 싸우다가 죽는것이
공자가 정해놓은 아름다운 예법이요,
이 예법을 잊는 자는 짐승이라 하는것이니,
만일 연개소문의 생전에,
당나라사람이 고구려에 복수하는 군대를 크게 동원하지 않으면
이는 그 나라가 분명히 짐승이나 다를바 없다는것을 자백함이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그러므로 중화 사관이
연개소문의 사년을
평양 침입의 이후까지 늘리려하는 치상(癡想)도 있으며,
또는 인국 군신의 죽음을 매양 그 보상(報喪)의해로 씀은
춘추의 서법인 고로,
중화 사관이 그 서법을 고수하는 벽견(僻見)도 있었을 것이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중화사관: 중국이 세계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역사학자
치상(癡想): 어리석은 생각
보상(報喪): 상을 알림
벽견(僻見): 치우친 소견

(옮기면)
그러므로 중화사상을 가진 사관이 연개소문의 사망년도를
평양 침입의 이후까지 늘리려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거나
, 또는 이웃나라 임금과 신하의 죽음을 항상
그 상(喪)을 연락받은 해로 쓰는것이 춘추의 기록법인 고로,
중화 사관이 그 서법을 고수하는
지나치게 치우친 편견도 있었을 것이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그 벽견에 의하여 『구당서』에는
“6월 임인에 개소문이 죽고,
자 남생(男生)이 막리지(莫離支)가 되어
예성(詣城)에 출순(出巡)한 새
제 남건(男建)으로 후사를 지(知)케 하였더니,
남건이 반하여 남생을 토하므로, 남생
이 별성(別城)에 의거하여
자 헌성(獻誠)을 보내어 구(救)를 구하다”하여,
연개소문의 죽음,
남건의 모반과 남생의 걸항(乞降)을,
모두 다 헌성(獻誠)분고(奔告)의 일
(6월 임인 1일 ─ 原註[원주])의 일로 적었으며,
그 치상(癡想)에 의하여

『자치통감』에는 “5월에 개소문이 졸하고 남건이 모반하여
남생이 당에 걸항하므로,
6월 임인에 당이 남생을 구하는 조(詔)를 내렸다”고 썼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출순(出巡): 순행을 나감
지(知): 주관하다, 알다
구(歐): 몰아내다, 치다
걸항(乞降): 항복을 권유함(구걸함)
분고(奔告): 달려가서 알림
헌성분고(獻誠奔告): : 진심으로 급히 보고하다.
치상(癡想): 어리석은 생각

(옮기면)
그 편견에 의하여 『구당서』에는
“6월 임인에 개소문이 죽고, 아들 남생(男生)이 막리지가 되어
예성(詣城)에 순행을 나가는 동안 동생 남건(男建)에게
뒷일을 책임지게 하였더니, 남건이 배신하여 남생을 몰아내므로,
남생이 별성(別城)에 의지하면서
아들 헌성(獻誠)을 보내어 구원을 구하다”하여,

연개소문의 죽음, 남건의 모반과 남생의 항복권유를,
모두 다 “충성심으로 급히 보고한”날(6월 임인 1일 ─ 原註[원주])의
일로 적었으며,
그런 어리석은 생각때문에
『자치통감』에는 “5월에 개소문이 죽고 남건이 모반하여
남생이 당에 구원을 청하므로,
6월 임인에 당이 남생을 구하라는 조서를 내렸다”고 썼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자치통감의 원문을 살펴본다.

乾封元年(丙寅,666)
高麗泉蓋蘇文卒,長子男生代爲莫離支
건봉원년(병인년)
고구려의 천개소문이 죽고, 장남인 남생이 막리지가 되었다.
<중략>
남건이 스스로 막리지가 되어 군사를 일으켜 남생을 토벌하였다.
남생은 도망쳐 별성으로 가서
그의 아들 헌성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6월 임인일, ..고려를 토벌하게 하였다.

연개소문을 천개소문(泉蓋蘇文)이라고 적었다.
연씨를 천씨로 바꿔서 적은 것이다.
이유는?
이세민의 아버지인
당나라 고조의 이름이 '이연李淵'이다.
그래서
淵(연못) 대신에
泉(샘) 을 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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