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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18(토)역사단편47-이두(19) 이두문해석법 (결론)벽골제와 석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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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j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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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연구초 '이두문해석법'의 결론은
아래와 같다.

이전 포스팅에서 두 개를 다뤘고
오늘은 나머지 두개다.

첫번째는 '벽골제'에 대한 것이다.
먼저, 다음에서 검색을 해보니

<나무위키>
'벽골'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우리말 '벼골'을 음차한 것이라는 설이 존재하지만, 워낙 오래된 지명이라 그 의미를 정확히 추적하기는 어렵다.
한자 의미 그대로 '푸른 뼈(碧骨)의 둑'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유홍준 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오래된 지명이라 정확히 추적하기 어렵다?
푸른뼈를 이야기하는 유홍준교수의 서적은 평가할 가치도 없다.

벽골제.JPG

지도에 보다시피 벽골제는 없다. 기념비와 기록만 남아있을 뿐.

이제 단재의 글을 보자.

전인의 위증한 자를 교정할 수 있으니,
역옹패설에 "신라 진흥대왕이 벽골제<속칭 金堤萬頃(김제만경) 외밤이들>를 짓고 도(稻)를 種하므로 후인이 그 은덕을 생각하여 稻를 羅祿이라 하다" 하였으니 羅祿(나록)의 解도 고린 漢文장이의 해석이어니와, 完山(완산)에 그친 眞興(진흥)의 족적이 어찌 김제의 벽골제에 가서 稻(벼)를 種(종)하리요.
백제 지리지에 거하면 碧骨(벽골)은 곧 김제의 古號(고호)요. 백제의 '군'이니, 碧骨(벽골)은 베골(稻邑)이니
백제가 이 堤(제)를 쌓아 稻田(도전)을 作하고 그 이익이 다대함을 기념하여 “베골”이란 군명(郡名)을 냄이 명백하다. 백제본기에 稻田을 記한 자가 둘이니, 하나는 다루왕 6년의 始作稻田이 그 是요, 두번째는 고이왕 9년의 '開稻田於南澤'이 是니 벽골은 곧 두번째에 속한 남택의 稻田(도전)이 될지니라.
(출처:조선사연구초)

櫟翁稗說(역옹패설):고려 말기 1342년에 이제현이 지은 수필집. 역사책에 나오지 않은 이문(異聞)ㆍ기사(奇事)ㆍ인물평ㆍ경론ㆍ시문ㆍ서화 품평 따위를 수록

稻: 벼 도, ‘나락’

「開稻田於南澤」은 서기 242년 고이왕대의 기록으로 원문은
九年, 春二月, 命國人, 開稻田於南澤.
<9년 봄 2월, 백성들에게(國人) 남쪽 소택지에 벼논을 개간하도록 하였다.>이다.

남북국시대 중엽까지는 우리말을 한자로 적는 '이두문'이
일반적인 기록방법 이었으므로,
당대의 기록을 해석할때는 이두문 해석법을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고대에 이름을 짓는 방식은 중요한 사물이나 의미를 담은 것이므로,
'벼를 심어 식량이 많이 나오게 된 장소'를 의미하는 행정지명으로 삼는것이 당연하다.

'벼가많이 나오는 고을'을 줄이면 '벼고을' 이고 '베읍(稻邑)' 이니
'碧骨(벽골)'로 썼다고 해석하면 합리적이다. 물론 이두문을 전제로 해야 가능하다.
김제의 옛 이름이 '碧城(벽성)'이라는 점도 단재의 해석을 뒷받침한다.

'베'는 벼의 방언이다.
골 : ‘고을’의 준말이면서 ‘고랑’의 준말이다.

물론 방언이라는 것도 현대적 의미에서 접근하면 안된다.
'표준말'이라는 것은 비교적 근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고려이후 기록에서 우리역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살펴보자.

前史에 두찬(杜撰)을 타파할 수 있으니 삼국사기에 석탈해는 金櫝(금궤)에서 탈출한 고로 이름을 탈해라 하고, 작명(鵲鳴)의 서(瑞)가 있었으므로 鵲(작:까치)자 좌변의 昔(석)을 차(借)하여 성을 석씨(昔氏)라 하였다 하며,
<동사회통>에 고주몽은 거국이 고앙(高仰)한 고로 성을 '高氏(고씨)'라 하였다 하며,
<문헌비고>에 '여수기(余守己)'가 단군의 9부 군장이 되어 중인이 부(附)하므로 '중인변(彳:衆人邊)을 가하여 徐氏(서씨)가 되었다 하여, 각종의 괴설이 분운하나,
그러나 삼국 중엽 이전에는 人, 地, 官 등 각종의 명사를 모두 우리말로 짓고 이두문으로 쓴 것이니,
어디 이 같은 漢字 破字(파자)의 벽습(僻習)이 있었으랴.

이따위 파자가 麗朝 중엽에 성행하여
황규(黃葵)가 황규(皇揆)가 되고,
계명성(鷄鳴聲)이 고귀위(高貴位)가 되고,
無古之那(무고지나)가 無古之難(무고지난)이 되고
身負三椽(신부삼연)이 王자가 된다는 等 說이 고려사에 보인 자 허다한 바,
이 시대의 이 습관을 잘 아는 문사들이 古記(고기)를 수습하다가
말로 지은 명사를 한자의 뜻으로 解하여
고사의 면목을 오손함이 적지 아니하니라.
<출처:조선사연구초>

杜撰(두찬)
저술(著述)에 전거(典據)나 출처(出處)가 확실(確實)하지 않은 문자(文字)를 쓰거나 오류(誤謬)가 많음

석탈해昔脫解: 신라의 제4대 왕(?~80). 성(姓)은 석(昔). 토해(吐解)라고도 한다. 국호를 계림(鷄林)이라 하였으며, 일본과 화친(和親)하면서 백제ㆍ가야와 자주 싸움을 벌였다. 재위 기간은 57~80년이다.

金櫝(금함, 금궤)
鵲鳴(작명): 까치울음
瑞(서): 상서, 신표
昔(석): 옛 석
借(차): 빌리다.
東史會通
擧國(거국): 온 나라
高仰(고앙): 높이 우러러봄
文獻備考(문헌비고):우리나라 상고 때부터 대한 제국 말기에 이르기까지의 문물과 제도를 총망라하여 분류하고 정리한 책
余守己(여수기): 초기국가시대 서씨 성을 하사받은 예국의 군장.
衆人(중인): 여러 사람
附(부): 붙이다. 더하다.
彳:중인 변
破字(파자): 한자의 자획(字劃)을 분합(分合)하여 맞추는 수수께끼를 말하는 것
紛紜(분운):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음
僻習(벽습) : 경박한습관
黃葵(황규): 노란 해바라기, 누를황, 해바라기(아욱)규
皇揆(황규): 황제의 법도
鷄鳴聲(계명성): 닭울음
高貴位(고귀위): 꼬끼오
無古之那(무고지나): 탈없이 편히지내, 요즘말로 하면 ‘잘 지내’에 해당하는 말을 이두로 적은것
無古之難(무고지난): 오래된 어려움이 없어짐
身負三椽(신부삼연): 몸에 세개의 서까래를 지다
汚損(오손): 더럽히고 손상함
고려사: 15세기에 기록한 역사서

즉, 고려와 조선시대의 학자들이 삼국시대의 이야기를 적으면서
멋대로 자신들의 유행에 맞춰버렸고,
그 때문에 상고사의 기록들이 엉망이 되었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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