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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22(월)역사단편37- '비정(比定)'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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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jew
70
12 days agoSteemit3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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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그 나라가 형편없는 나라였다는 뜻은 아니다.

변치 않는 다는 순금도
시간이 지나면 광채가 사라진다.
다이아몬드도 자체로는 상하지 않지만
먼지가 덮여 빛이 사라진다.

광채가 사라졌다고해서
다이아몬드와 순금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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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중국땅과 한반도의 북부는
처음부터 변화무쌍한 곳이었다.
여러 종족들의 번성과 이동의 통로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반도의 한강을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되어 살다보니
먼 옛날부터 그랬으려니 하고 착각할 뿐이다.

자본주의가 불과 수백년 된것이고
우리에겐 겨우 1백년 된 것이지만
마치

고대부터 이어진 삶의 방식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역사는 그냥 읽으면서 외우면 되는 기록이 아니다.

땅은 그대로지만
땅에 붙인 이름은 계속 변했다.
아예 사라져버린 이름도 있다.

행정, 군사적인 실무적인 것이나
증오나 우월감을 반영한 이념적인 이유로
지명이 변했다.
중국인들은 이방인을 미워하고 천대했다.

망상에 사로잡힌 나머지,
고대 조선인들의 국가에 대해
위치, 지명, 왕의 이름등을 멋대로 적었다.

처음에 누군가 기록을 하면,
검증도 없이 그대로 옮겨 적으면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사족을 붙여 왜곡하고,
비하하는 의미의 글자로 고쳐서 적었다.

조선인이 이름붙인 지명이나 관직의 이름을
한자로 옮기면서 오류를 범하거나 고의적으로 왜곡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기저기 고대의 지명들이나 변화기록이 남아있어서
그것들을 중심으로 꿰어 맞추기를 해야한다.

'비정(比定)'해야 한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기록들을 비판적(합리적)으로 비교하여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판과 합리성의 근본은 무엇인가?

논리적 타당성이다.
'앞뒤가 말이 되어야 한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역사를 제대로 해독할 수 있는 것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합리적-논리적 사고능력을 갖춘 '지능적인 존재'이다.

조선에서 역사학은 더이상 사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반대로,
논리적 사고를 갖춘 사람만이 해독할 수 있는 수수께끼다.

한국에서 강단 사학자라고 자부하는 교수니 연구자들은
공무원이나 중고등 학생을 가르치는 강사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옳다.

이성적 판단능력은 부족하고
연예인처럼 자극적으로 연출할 뿐이니
더이상 학자라고 자처해서는 안된다.

논리적인 사고를 갖추었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조선의 상고사'를 접하길 권한다.

이땅의 역사학자들은 할 수 없는 일이고
논리적 사고를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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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검색하니 '매봉산'이라는 곳이 네 곳 있다.

만일 상고사의 어떤 책에서 이르길,
"왕검이 매봉 서쪽 20리에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 했다.
조선의 왕성은 바다에서 40리 거리다. 강은 서쪽으로 흐른다.
200년 후에 바다건너 강을 거슬러 '김국'이 10만 군사로 쳐들어와
전쟁에서 패하니
왕검은 매봉산으로 들어갔다." 라고 했다.

500년의 세월이 흘러서, 왕검이 나라를 세웠던 지역은
김국의 영토가 되었다.
매봉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태백지역에 있는 매봉산만 '내붕산'으로 바뀌었다.

조선의 영토는 강원도 동쪽과 전라, 경상도 지역으로 좁혀진채 1천년이 흘렀다.
조선인들은 더이상 옛 조선의 지역에 가본일이 없었다.
천년후에 조선의 어떤 역사책에 '매봉산'은 지금의 '내붕산'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다. 지명들은 또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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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역사학자들이 다시 해석했다.

내붕산은 내봉산이다.
'봉'과 '붕'은 발음이 비슷하다.
그 증거로 지금 내봉산이 있다.
강이 서쪽으로 흐른다는 것은 무시한다.
'바다'와 '강'이 있으므로
지금의 B,C 지역중 하나이다.

이렇게 해서

3천년전에 왕검이 나라를 세웠던 곳은 전라도나 경상도의
내봉산 지역이 되어버린다.

현재의 영토가 전라, 경상, 강원이므로...

어떤 학자가 있어서,

"왕검이 나라를 세웠던 곳은
첫번째 그림에서 C 지역이다.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 가까이 있고,
조선인들은 강옆에 도읍을 정했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했다.

역사학계를 장악한 사학자들은 이렇게 무시한다.

객관성을 상실한 '민족주의' 사학자의 주장으로
다른 나라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
거제 내봉산 근처에서 '왕검사당'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러니 우리 주장이 옳다.

이것이 남한주류 역사학자들이
대한민국의 '상고사'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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