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7(화)역사단편239. 북벌론15, 북벌론의 와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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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글을 다시 읽어간다.
조정의 토벌군이 도착하자, 묘청의 목을베어
항복을 구걸했지만, 거절 당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왜 거절했을까?
趙匡 等(조광 등)이 妙淸(묘청)을 斬(참)한 뒤에
朝廷의 赦意(조정의 사의) 없음을 보고
이에 倉卒히 叛(창졸히 반)하여 據戰(거전)하였으니,
金富軾(김부식)이 萬一 尹彦頤를 信用(만일 윤언이를 신용)하였으면
時日間에 討平(시일간에 토평)하였을 것이거늘,
富軾(부식)이 終是(종시) 彦頤(윤언이)를 猜疑(시의)하여
緩攻의 計(완공의 계)를 쓰다가
末乃(말내)에 兩年에 亘(양년에 긍)토록 勝算(승산)이 없어
內(내)로 仁宗의 疑懼(인종의 의구)가 적지 않고,
外(외)로 金國 來侵(금국내침)의 念慮가 急(염려가 급)함에,
彦頤(윤언이)의 말을 들어
工人 趙彦이 製한 石砲(공인 조언이 제한 석포)로 城門을 부수고
火毬(화구)를 던져 陷城(함성)의 功을 奏(공을 주)하였으니,
『高麗史고려사』에
妙淸(묘청)·尹彦頤(윤언이)·金富軾(김부식) 三傳을 詳察(상찰)하면
本 戰役의 成功(본 전역의 성공)은 모두 尹彦頤(윤언이)의 策(책)에서 出함이요,
金富軾(김부식)은 寸功(촌공)이 없음이 明白하다.
尹彦頤(윤언이)가 妙淸과 同一(묘청과 동일)한 稱帝北伐論者(칭제북벌론자)로서
이제 도리어 妙淸 討伐(묘청토벌)에 盡力(진력)하니,
主義(주의)를 負(부)함이 아닌가.
< 출처: 朝鮮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독립기념관>
斬(참): 목을 베다
赦意(사의): 용서할 마음
倉卒(창졸): 다른 방법없이 급하게
叛(반): 배반하다
討平(토평): 쳐서 평정함
亘(긍): 이어지다
終是(종시): 끝내
猜疑(시의): 시기하고 의심함
緩攻의 計(완공의 계): 공격시기를 늦춤
末乃(말내): 끝내
疑懼(의구): 의심하고 두려워함
陷城(함성): 성을 빼앗음
奏(주): 이루다
詳察(상찰): 자세히 살펴봄
寸功(촌공): 아주 작은 공로
盡力(진력); 있는 힘을 다하다
負(부): 배반하다
(옮기면)
조광 등이 묘청의 목을 벤뒤에 조정이 용서하지 않을 것임을 보고
이에 급히 마음을 돌려 싸움을 하였으니,
김부식이 만일 윤언이를 신용하였으면 며칠내에 평정하였을 것이거늘,
부식이 끝내 윤언이를 시기하고 의심하여
완공의 계책을 쓰다가
마침내 2년이 되도록 승산이 없어
안으로 인종의 의심이 적지 않고,
밖으로 금국이 쳐들어올 염려가 급함에,
윤언이의 말을 받아들여
기술자 조언趙彦이 만든 석포로 성문을 부수고
불덩어리를 던져 성을 함락하는 공을 이뤘으니,
『高麗史고려사』에
묘청,윤언이,김부식 3개 열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전쟁의 성공은 모두 윤언이의 전략에서 나온것이요,
김부식은 한토막의 공도 없음이 명백하다.
윤언이가 묘청과 동일한 칭제북벌론자로서
이제 도리어 묘청토벌에 진력하니,
북벌주의를 배반함이 아닌가.
< 출처: 조선역사상일천년래 제일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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