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o Nutbox?

2024/10/28(월)역사단편194. 독사신론讀史新論(76) 제10장 마무리

1 comment

neojew
71
3 days agoSteemit2 min read

단재400.jpg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다.
< 출처: 단재 신채호, 讀史新論[독사신론]>

然則(연즉)
高句麗(고구려)도 卽(즉) 我史(아사)에 排斥不載(배척부재)함이 可(가)하거늘
何故(하고)로 三國(삼국)이 竝稱(병칭)하였느뇨.
曰(왈) 此(차)는 又(우) 其故(기고)가 有(유)하니
高句麗(고구려)가 平壤(평양)에 都邑(도읍)하였던 故(고)니라.
曰(왈)
然則(즉연) 渤海(발해)도 일찍
我國 西北 一帶(아국 서북일대)를 占有(점유)하였으니,
萬壹 其 都邑(만일 기 도읍)만
此(차) 西北 等 地方(서북 등 지방)에 移(이)하였더라면
我史(아사)에 得列(득열)하였을까?
曰(왈)
是又(시우) 不然(불연)하니 彼 金氏(피 김씨)의 心은
惟(유)
自己朝廷(卽 高麗)[자기왕조 즉 고려]에게 正統(정통)을 與(여)함에 在(재)하니
萬壹 渤海 都邑(만일 발해 도읍)이 鴨綠 以東에 在(압록이동에 재)하였더라면
彼(피)가 又 高句麗(우 고구려)까지 竝(병)하여
我史(아사)에 不載(부재)하였을진저.
然(연)이나
金氏 壹人(김씨 일인)이 又(우) 何足責(하족적)이리오만
余(여)의 竊歎(절탄)하는 바는
數百年來(수백년래)의 歷史家(역사가)가
都是(도시) 金氏(김씨)의 謬(유)로 因(인)하여
渤海 歷代(발해 역대)가 我史(아사)에 不見(불견)하였도다.
<출처: 讀史新論(독사신론), 독립기념관제공>

然則(연즉): 그러면
竝稱(병칭): 함께 부르다
得列(득열): 잡아서 넣다
不載(부재): 기록에서 빼다.
又(우): 또
何足責(하족적): 우엇을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竊歎(절탄): 몰래 한숨쉬다
都是(도시): 도무지
謬(유): 잘못

(옮기면)

그러면 고구려도 곧 우리 역사에서 배척하여 싣지 않음이 옳은데,
무슨 까닭으로 삼국이라고 함께 불리었는가.
이것은 또 그 이유가 있으니
고구려가 평양에 도읍 하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발해도 일찍이 우리나라 서북쪽 일대를 차지하였으니,
만일 그 도읍만이라도 이 서북쪽 지방에 옮겼더라면
우리 역사에 집어넣을 수 있었을까?
이것은 또 그렇지 않다.
저 김부식의 마음은 오직 자기 조정(즉 고려 )에 정통을 부여함에 있으니,
만일 발해의 도읍이 압록강 동쪽에 있었더라면,
그는 또한 고구려까지 아울러 우리 역사에 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부식 한사람이 무엇을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만
내가 가만히 탄식하는 바는
수백년 동안 우리 역사가들이 모두 김부식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발해 역사가 우리 역사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 未完[ 미완])<출처: 讀史新論(독사신론)>

<大韓每日申報[ 대한매일신보] 1908. 8. 27∼9. 15, 10. 29∼12. 13, 50회 연재>

독사신론목차1.jpg

독사신론은 여기서 미완성으로 끝났고,
단재의 역사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Comments

Sort by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