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개봉했던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마시는 꽃차나 쌍화차가 아니라 '지옥으로 안내하는, 한번 타면 절대 내릴 수 없는 불수레'인 '火車'로 일본 민화속에 등장하는 형벌도구라고 해요. 원작 소설과는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부터 결말까지 상당부분 차이가 있으며 일본에서는 스페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수의사인 문호(이선균 분)와 그의 여친 선영(김민희 분)은 결혼을 한달 앞두고 부모님께 선물과 청첩장을 드리기 위해 고속도로를 탑니다. 휴계소에서 잠시 선영이 부탁한 커피를 사러간 문호. 그 사이 선영은 전화한통을 받고... 홀연히 증발해 버립니다. (휴거 아님)
하늘에선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고 차 시동은 켜져 있었으며 차문은 열려 있었고 시댁에 인사를 하기 위해 새옷까지 차려 입은 그녀가 갑자기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사라진겁니다. 머리핀은 화장실에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요.
화차는 웰메이드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된 1990년대 초 잃어버린 10년을 배경으로 한 원작의 분위기를 우리나라 IMF 이후의 시점으로 옮겨와, 신용불량과 개인파산등의 사회적 그림자를 '타인의 인생을 훔쳐 살아온' 주인공 선영을 통해 아픈 시선으로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모티브로 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도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해 '그것이 알고 싶다'와 '궁금한 이야기Y'등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고 '사랑과 전쟁'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방영되기도 했지요. (사랑과 전쟁 다시 안하나?)
한동안 깊은 사랑을 나누고 결혼까지 약속한 상대가 어느날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그리고 내가 알던 상대의 모든 것이 다 거짓이고 허상이었다면... 그 얼마나 충격적이고 허망할까요?
우리는 살면서 결코 상상해 보지 못했던 사건에 맞닥뜨린 문호와 동일한 심정으로 감정 이입되어 영화 초반부터 과하게 숨죽이며 영화에 몰입하게 됩니다. 상상하진 못했지만 요즘 같이 험한 세상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어떻게든 찾아내고 이유를 알아야겠다는 의지가 함께 불타오르게 되지요. 그 조사 과정이 정말 흥미 진진하고 긴장감 넘쳐서 '거참 이상하네...' 하면서 초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꽁꽁 감싸고 있던 선영의 삶의 진실들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너무나도 가슴 아픈 현실을 마주하고 그녀를 동정하게 됩니다. 점점 막다른 길로 치닫고 독하게 변해가는 캐릭터를 김민희가 정말 완벽하게 소화했어요. 그동안 발연기의 대표주자였던 그녀가 갑자기 매소드 연기를 하고 나와서 모두를 감탄하게 했죠. 그간의 연기력 논란이 이 화차를 계기로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오... 만족스런 라임)
데이비드 핀처의 'Gone Girl / 나를 찾아줘'랑 비교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같은 미스터리스릴러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스토리라서 둘다 보시는걸 추천합니다. 둘 중 하나만 택한다면 저는 화차를 권해드리고 싶네요.
김민희, 이선균, 조성하의 연기도 좋지만 지금은 이름이 많이 알려진 명품 조연들도 중간중간 꽤 등장합니다. 참고로 조성하가 연기한 형사역할이 원작에서는 이선균 비중의 주인공이었다고 하네요.
그동안 감독의 전작들은 (낮은 목소리, 밀애, 발레교습소) 만족스런 흥행결과를 얻지 못했었는데 개봉 2주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면서 첫 상업영화로서의 흥행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화차' 이후 차기작 없이 꽤 오래 쉬었는데 금년 '조명가게' 라는 작품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많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변영주 감독 화이팅!!
화차에 몸이 던져진 선영의 비극적인 삶과 갑자기 봉변당한 문호가 만들어가는, 잔인하거나 공포스럽고 음산하지 않아도 이 여름 여러분의 등꼴을 충분히 오싹하게 만들어 줄 명품 수작 Mr.Lee 스릴러 '화차'! 강려크하게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