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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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가을 나무가지처럼 설핀 그림자로 걷는다
사랑도 가을이면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어 기온이 떨어지는지
껴 입은 옷이 두텁다
여자의 긴 머리 위로
단풍잎 하나 떨어진다
꽃잎을 떼어주던 남자의 손은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있을 뿐
은행잎이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어깨로
키 작은 백양나무가 노랗게 젖는 길에서
두 사람은 한 남자로 한 여자로
빈가지가 되어 걸어간다
가을비 / 박규리
무당 두 사람이 산기도를 왔다가
느닷없는 가을비에 떨며 서성이다가
해가 져 할 수 없이 암자에 들어
스님, 마당에서라도 하룻밤 묵어 가면 안될라우?
꾸벅꾸벅 졸던 스님 뛰어나가
아이고, 어서 오소! 공양부터 드시오
나에게 밥 차려 오라는 눈치다
저녁은 드리겠으나 잠은 잘 곳 없으니
저 아래 마을 여관 가서 자시오
나는 맵게 말을 끊었다
사람 좋던 스님
처마 끝으로 후득후득 비 긋는 소리
무심히 듣고 섰더니,
혼잣말인 듯 한숨인 듯······
······따스한 방안에서
여지껏 비에 젖지 않은
자네가 마을 여관 가서 자고
한비에 온몸 젖은 사람들은
따스한 이불 펴고 방안에서 주무시게······
빗물이 계곡을 덮쳤다
가을비에 웬 천둥까지 내리는지······
그날 밤, 나는 여인 둘과 한방에 나란히 누웠다
쓸쓸한 참회의 잠이 고즈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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