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검사 時歷檢査] 정치의 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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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될라고 부모 산소까지 이장하는 나라에서 왜 무속만 묻으면 이 난리를 치는 걸까? 이 나라 무속인이 100만이라는데, 점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사주에, 타로에, 점성술에, 각종 하이테크놀로지 미래예측 애플리케이션이 발에 채이는 시대에, 왜 무속이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탄핵을 해대는 걸까? 너도 궁금하면서. <파묘>를 천만이나 보는 나라에서.
(2)
저만 알고 싶어 그러는가? 용하다는 점쟁이 독점하고 싶어 그런가? 명태균이는 덕분에 드디어 인생 피게 생겼다. 자기 구속되고 한 달 안에 대통령 탄핵될거란 예언까지 맞췄으니. 온갖 정치 지망생들의 면회 요청에 구치소가 문전성시를 이루겠구나. (구속될 거란 점괘는 왜 못 맞췄는지 몰라. 아, 노이즈 마케팅인가?)
(3)
세상일이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고, 시대와 정세는 더더욱 예측 불가의 안개 속으로 진입하는데, 나랏 일이라고 다를까? 누가 트럼프가 재선 할 줄 알았으며, 비트코인이 10만 달러를 돌파할 걸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어떤 슈퍼컴퓨터가, 어떤 AI가, 내년 코리안시리즈 우승팀을 맞출 수 있단 말인가. 확률의 영역에 속하는 그것을 예언의 돋보기로 들여다보고 싶은 게 인간이 아닌가. 그것도 남들보다 빨리, 남들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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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대로 나라에는 국사가 있고, 미래를 점보는 일은 국가 통치의 근간이었다. 비가 언제 내릴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걸 이성과 과학이 대체하기 시작하며 인류는 미래를 측정할 수 있다고, 모든 미래는 결정되어 있으니 모든 변수를 계산할 수 있으면 미래 역시 결정할 수 있다고 꿈에 부풀었다. 뉴턴의 세계를 완!전!정!복!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 과학이 배신을 제대로 땡겼으니, 세상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고, 관측자의 행위에 따라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거라고 말하고는, 바턴을 다시 무속에게로. 그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내일 달이 뜰지 안 뜰지 알 수 없다고 선언해 버렸으니. 이를 우얄꼬. (걱정 마. 우리에게는 사주와 타로가 있잖니.)
(5)
자기 마음이 뭔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점쟁이, 역술가를 찾아 과거를 들키고, 현재의 불안한 마음을 읽힌 뒤에 (정해진 대로 살아 그런걸), 물가에 가면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음을 예언에 맡기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계는 시간에 구속된 세계이니, 너는 사주대로, 태어난 그대로를 살아내고 말 것이다. 수많은 평행우주의 가능성을 포기한 채.
(6)
이상한 얘기는 그만하고, 어쨌거나 세상이 다 아는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고관대작들은 사주 정보 누설을 금지했고, 심지어는 거짓 생시를 퍼뜨리곤 했단다. 그걸 알면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 믿었으니. 그래서 알려진 정보는 더 이상 정보가 아닌 것이다. 상대가 대응하고 적들이 대비하니, 관측자가 많아지고 행위자가 늘어나면 배는 산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속 논란은 비밀을 감추고픈 역정보일지도. (그런데 왜 감추는 거지? 정해진 미래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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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해관계자와 행위 주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나랏일은 더더욱이나 예측 불가의 영역에 꽁꽁 숨어 있다. 그리하여 탐욕을 채우려는 이들은 예언을 갈구하고 정보우위를 열망하지만, '가치'를 추구하는 진짜 정치인이라면 사주가 어쨌거나, 별들의 위치가 어떻거나,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정진'할 것이다. 그 '가치' 따위 관심 없는 모리배들이 권좌를 얻으려고 사생결단의 링 위에 오르니, 천기를 알고 싶어 안달인 게지. 저놈만 때려눕히면 이기는 승자독식의 상대평가라고 여기니까. 그러나 '가치'를 실현시키려는 이는 링 위에 오르는 파이터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달려가는 마라토너인 게지. 그게 무엇이든, 완주를 목표로 하는 자에게 예언은 필요가 없다. 그래도 지구는 돌고, 나는 그래도 달릴 거니까.
(8)
기억해 보라. 역대 나랏님의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윤의 가치는 무엇이었냐? 문재인, 이재명 때려잡기? 지가 잡혔네?? (을사년 운세에 이재명이 승천하고 윤은 감방행이라니 지켜보자, 윤이 운명을 극뽁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지) 차기 주자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은 그 '가치'를 위해 자신을 얼마나 헌신해 왔는가? 이 정치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내놓기가 낯부끄럽다면, 이 승자독식의 링은 오로지 불법, 탈법, 거짓 선동으로만 승부가 나는 무속 대 무속의 난리 굿판일 뿐이다.
(9)
우주는 고정돼 있는 게 아니다. 미래는 불변이 아니다. 만물 중 유일하게 본능이 아닌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에 의해, 우주의 운명은 불변이 아니라 역동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파괴할 테니까) 인간의 이토록 치열한 환경파괴에 자연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5번의 대멸종은 인간 탓인가? 인간 없이도 일어난 대멸종이 왜 인간 때문에 일어나선 안 되는가?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정해진 운명이고, 그것을 극복할 힘이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가치'를 실현시키려는 자에게 삼재와 각종 살은 극복해야 할 인생의 장애물이고 자신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킬 도구일 뿐이지만, 정해진 미래를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기회주의자에게는 예정된 쇠창살이 들이닥칠 뿐이다.
(10)
그러니 문제는 무속이 아니야. 무속이 필요한 모리배들 사이에 '가치'를 실현하려는 리더가 없는 것이지. 그리고 그건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운명이 토해내는 거지.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리더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전 국민이 무속에 탐닉하니 점쟁이가 점지해 준 대통령이 탄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원정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가 친미 부역자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길일 받아 태어난 아이가 손바닥에 王자 쓰고 나온 대통령 보고 '저렇게 하는 거구나'하고 배우는 건 참교육이다. (아, 8학군 출신 당대표가 "제가 투표했나요?" 하는 것도) 그러니 누구를 탓할까? 마법사도 내년 운세나 보러 가야지. 승자독식이라니 이기면 장땡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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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역학은 '요행'을 바라며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레밍 집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결사'를 통해 창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사'는 스무 명이면 충분하다.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
몇 날 며칠을 정신 없이 도망친 테무진이 도착한 곳은 동쪽의 발주나 호수였습니다. 발주나 호수에 이르자 끝까지 테무진을 수행하던 사람들은 겨우 19명만 남아있었습니다. 몽골의 떠오르는 태양이자 수천, 수만 명의 군대를 거느린 테무진에게 겨우 19명의 수행원만이 목숨을 걸고 그를 따라왔던 것입니다.
징기스칸은 발주나 호수에서 그를 따르던 19명의 인물들과 맹세를 합니다. "나로 하여금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업을 이룩하도록 도와주소서.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이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소서. 만일 내가 이 말을 어기면 이 흙탕물처럼 되게 하소서."라고 맹세하며 발주나 호수의 흙탕물을 나눠마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본 지 너무나 오래 되었다. 슬프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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