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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반가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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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sd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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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onths agoSteemit3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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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반가울 수가/cjsdns

아침 운동할 때면 뵙는 분이 있었다.
연세도 많아 뵐 때면 인사드리고 했는데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으신다.
그게 일 년이 훨씬 넘는 야기다.

돌아가셨나 싶어 그분과 이웃하여 사는 분을 혹시 만나면 안부를 물었다.
그렇게 알아낸 소식은 병원에 입원하셨고 벌써 수개월이 됐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다 올 이른 봄 퇴원은 해서 집에 와 계시다는 소식까지는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고 당분간은 거동이 불편해서 못 나오시나 날씨 좋아지면 나오실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침 일찍 운동하러 나오면 우선 두리번 거린다.
낯이 익은 분들이 있나 싶어서이다.
한겨울에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곰처럼 겨울잠을 잤는지 운동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봄이 오고 나니 사람들이 늘어 혹시나 하고 봐도 대부분 낯이설은 사람들이다.
경남 아파트 부부는 날씨 풀리고 나니 나오는데 운동장 들어서면 손뼉을 치면서 걷는 누님 같은 분도 안 보인다.
이분은 뭘 도와달라 해서 한번 집을 간 적이 있어 집은 알지만 혼자 사는 분 집으로 찾아가는 것도 그렇고 해서 소식만 궁금해하는데 아직도 두문불출이신 듯 운동장에는 모습이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분이 운동장에 들어서신 것이다.
감회가 새로운 듯 한참을 서서 여기저기 바라보신다.

멀리서 보니 그분이라 반가움에 달려가 인사를 하고 그간의 안부를 여쭈었고 같이 보조를 맞춰서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은 운동장 오시는 분 중에 최고의 연장자라는 정도 사시는 동네가 톳골 빌라에 사신다는 정도였는데 오늘은 많은 것을 물어서 알았다.

연세는 88세이며 슬하에는 4여 1남을 두셨다는 거 딸만 넷을 낳아 그때는 면이 안서다 끝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거 그런데 지금은 딸이 우선인 세상이 됐고 부모에게도 딸이 좋더라 이번에 병원에 있을 때도 막내딸이 직장까지 그만두고 병간호를 붙어서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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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운동장을 네 바퀴 도는 동안 이어졌고 이제 이만큼 걸었으니 쉬었다 갈게 하시며 자주 나오시겠다고 하시는데 건강해지셨으니 기념으로 사진 한장 찍죠 하며 휴대폰을 꺼내니 뭘 사진까지 하시면서 웃으며 응해주신다.

반듯하게 걸으시는 그분을 뵈면 난 좋으면서도 가슴이 무너진다. 나의 어머니는 그분보다 겨우 한살이 많으신데도 워낙에 고생을 많이 하셔서 다리도 허리도 굽어 제대로 걷지를 못하신다.

하여 십여 년 전부터 인공관절 수술을 하면 좋을 듯하여 말씀드려도 극구 반대를 하시며 안 하시니 날로 걷기가 어려워지시는 것이다. 고뿔로 동네 병원정도는 몰라도 당신의 몸에 칼 대는 수술 같은 것은 아니라며 극구 반대하신다.

주어진 대로 살다가 가면 됐지 뭘 더 욕심내냐며 지금까지 산 것도 축복이라며 이젠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으시다는데 그러시면서도 밖에 나가 나도 걸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젊어서 삶 전체를 논과 밭에서 보내신 분이라 봄이 되니 논밭 구경을 하시고 그 안에서 예전처럼 가꿈을 하고 싶으신 게다.
그러나 세월 되돌릴 수 없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 신다 한다.

그런데 오늘 뵌 분은 비슷한 연배이신데 반듯하게 걷는 게 무척 좋아 보이고 부러웠다.
사경을 헤매고 다시 살아오신 분이 저렇게 씩씩하게 걷는데 나의 어머니는 그렇지 못하시니 속상하다.

운동장 네 바퀴나 걷고 가신 분이 자식들에게 고맙다고 특히나 막내딸이 너무 고맙다고 하시며 아들 못 낳아 무척 민망해하다 끝으로 아들도 낳기는 했는데 세월이 변해 그런가 지금에서 보니 아들보다 딸이 좋다고 하신다.

한때는 아들이 최고였는데 이젠 딸이 최고인 세월이다.
그런데 어머니도 딸이 둘이나 있는데 그 딸들 요즘 딸이 아닌 거 같다. 그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감사합니다.

2023/06/02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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