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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만.두.만.세】 엄마가 죽도록 미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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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slee
81
2 years ago7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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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입학식 강당에서 했잖아요?”
“밤새 내린 눈이 발복까지 덮었지.”
“수많은 선생님 중에 샘을 찍었다고요.”
“소원대로 됐구나.”
“그래서 엄청 기뻤어요.”
“엄마들은 젊고 예쁜 여선생님을 다 원하는데.”
“샘은 최고로 멋졌어요.”
“넌 아주 멋진 친구였어.”
“......?”

사실, 만두는 아주 특별한 아이였다.
입학식이 있기 전, 일학년 담임을 배정받은 교사들은 입학식을 준비한다. 학부모들이 기록한 입학원서를 보고 학생을 세 개 반으로 나눈다. 학급 이름표를 만들어 봉투에 넣는다. 큰 봉투에는 ‘해, 달, 별’ 이라고 적혀 있고, 교사는 글씨를 적어 접은 작은 쪽지를 뽑는다. 쪽지를 펼쳐 보아 ‘해’이면, 큰 봉투 ‘해’을 가져간다. 그 속에 반 친구들의 명단이 들어 있다. 사부는 ‘별’을 뽑았다. 별반 담임교사인 거다. 15명 학급 학생 이름표에 맞춰 교실 책걸상을 맞춘다. 사물함을 정하고, 신발장에 번호가 적힌 붙임딱지를 붙인다. 교실 칠판에는 ‘입학을 환영합니다’ 라는 글씨를 크게 적는다. 현수막이 교실 뒷면 작품 게시판에 내걸린다. 교실 앞문과 뒷문에는 풍선과 인형을 매달아 첫 교실을 꾸민다.
그리고, 입학실 날 현관과, 교실, 입학식이 있는 강당에 ‘해, 달, 별’ 이름 아래 반 학생들의 이름을 적는다. 학생과 학부모는 이름을 보고 무슨 반 몇 번인지 확인하고, 입학식장에 마련된 의자를 찾아 앉는다. 입학식 의자에는 커다란 번호가 붙어 있다.
입학식이 있기 전에 학생들은 모두 자기 번호 자리에 앉아 누가 담임이 될지 기다린다.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모두 두근거리는 시간이다. 교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다.
“선생님, 반이 바뀌었어요.”
“......?”
순간 달반 선생님은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달반 섬생님이 반을 잘못 적어 현관과 교실, 강당에 붙인 것이다. 해반은 그대로인데, 달반과 별반 학생이 바뀐 것이다.
“선생님, 바꾸지 말고 지금 이대로 가요.”
“고마워요.”
사부는 별반 담임교사이다. 달반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이름표가 적힌 봉투만 바꾸면 되는 거다.
실수, 착오가 없었다면, 만두는 달반 젊고 예쁜 여선생님 반이었다. 그렇게 해서 달반이 되어야 할 만두는 별만이 되고, 사부와의 첫만남이 시작되었다.

첫수업이다.
매년 사부는 입학선물로 씨앗을 나눠준다. 백합 알뿌리와 옥수수 씨앗이다. 교실 한복판에 김장 매트를 깔고, 상토를 수북히 쏟아 담는다. 찐만두들은 작은 화분에 상토를 담고, 옥수수를 심고 물을 주어 교실 창가에 둔다. 싹이 트는 것을 관찰하는 거다.
사부는 ‘옥수의 삶’을 영상을 보여준다. 어떻게 싹이 트고 자라서 옥수수를 열리는지 신기하다. 옥수수를 삶아서 함께 먹는 영상을 보면서, 자신들도 꼭 그렇게 해보리라 다짐한다.

화면 캡처 2022-01-23 004009.png

옥수수 씨앗과의 만남이다.
“나의 옥수수로 와줘서 반갑다, 고맙다, 축하한다, 사랑한다. 잘 커라”
사부가 세 번을 말하면 찐만두들이 세 번을 따라한다.
“자, 이제 옥수수 씨앗을 나눠 드리겠습니다. 옥수수 주인이 되고 싶은 친구는 옥수수에 씨앗에게 말을 건네야 해요. 잠을 자고 있는 아기 옥수수 씨앗을 깨워주세요.”
“아기 옥수수 씨앗이 잠을 자요?”
“곰이 겨울잠을 자듯이 모든 씨앗은 잠을 잔단다.”
“잠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말을 건네는 거야. 엄마가 너희들의 잠을 어떻게 깨우는지 잘 생각해 보렴. ‘나의 옥수수로 와줘서 반갑다, 고맙다, 축하한다, 사랑한다. 잘 커라’ 라고 말해주면, 옥수수가 눈을 반짝 뜨고 기지개를 켤 거야. 옥수수 주인이 되고 싶은 친구, 손 들어보세요.”
사부의 말에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간다. 모두 손을 든다. 그런데, 손을 들었다가 슬그머니 내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사부는 슬쩍 보고, 머리에 새긴다.
찐만두들은 ‘저요, 저요’ 소리를 지르며 먼저 받고 싶어한다. 어서 달라고 책상을 두드리는 찐만두, 발을 동동 구르는 찐만두, 크게 소리치는 찐만두, 성급하게 튀어나와서 손을 벌리는 찐만두도 있다.
사부는 한 명의 친구가 손을 들지 않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에, 그 친구 기를 죽이지 않으려고 모두 손을 내리게 한다.
“모두 손 내리세요.”
사부의 말에 찐만두들은 손을 내린다.
“예쁘게 자기 자리에 앉아서 기다릴 줄 아는 친구부터 줄 거예요.”
책상에 엎드린 만두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거다. 줄을 세우지 않고 다 앉게 한 거다. 사부는 만두 한 번 보고, 눈에 담은 후, 모두가 바라볼 수 있는 찐만두 1에게 다가간다. 찐만두 1은 손바닥을 두 손으로 받쳐 든다. 사부는 옥수수 씨앗을 내려놓는다. 옥수수 씨앗을 받은 찐만두 1은 사부가 했던 말을 기억해서 옥수수에게 말한다.
“나의 옥수수로 와줘서 반갑다......잘 커라”
“틀렸어요. ‘고맙다, 축하한다, 사랑한다’ 빼 먹었어요.”
“틀리는 거 없어요. 한마디만 해도 되는 거예요. 옥수수 씨앗은 다 알아들어요.”
“씨앗이 그렇게 똑똑해요,”
“엄청 똑똑하단다.”
사부는 자신 있게 말한다. 찐만두들은 씨앗이 똑똑하다는 걸 인정하기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잘래잘래 흔든다.
사부는 일학년 담임교사만 한 게 이십년도 넘는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는다.
“알았어. 아주 멍청한 씨앗을 받고 싶은 친구는 고개를 저어도 돼.”
이 말에 아무도 고개를 젓지 않는다. 모두 똑똑한 씨앗을 받고 싶은 거다.
찐만두들은 옥수수 씨앗이 엄청 똑똑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눈빛이 달라진다. 신기하다. 이 작은 씨앗이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게 신기하다. 싹이 튼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리고 자라서 맛있는 옥수수를 주인에게 선물해준다는 것도 신기하다. 눈을 반짝거리고, 귀를 기울이고, 심장이 뛰는 ‘씨앗과의 만남’ 첫수업이다.
“나의 옥수야, 반갑다. 잘 키워줄게.”
“네, 주인님, 반갑고, 고맙고, 사랑해요. 전 잘 클게요. 주인님도 잘 자라세요. ”
옥수수가 말했다.
사실은 사부가 대답해 주는 거지만, 만두들은 옥수수가 정말 말한 거라고 믿는다. 씨앗이 똑똑한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이다.

만두만 옥수수를 심지 않았다. 사부는 억지로 심으라고 하지 않았다.
“만두야, 기다릴게.”
“......!”
“씨앗은 만두가 주인이 되주길 기다리고 있단다.”
“......!”
만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사부는 만두가 받지 않은 옥수수를 손바닥 위에 놓고 들여다본다. 만두의 눈치를 살핀다.
‘나의 씨앗과의 만남’ 첫 수업이 끝난다.
“내일은 텃밭 정원에 나가 백합 알뿌리를 심을 거예요.”
사부는 내일을 기대하게 말한다.
백합은 구덩이를 깊이 파서 심어야 한다. 사부는 미리 구덩이를 파 놓는다. 백합 알뿌리를 넣고 상토로 덮어주면 된다. 그리고 이름표를 꽂는다. 길목을 오고 가며 백합이 어떻게 싹이 트고 꽃을 피우며 엄마 백합이 되고, 엄마 백합이 아기 백합을 만드는지 알게 된다.
내일은 백합 알뿌리를 심게 될 찐만두들은 모두 교실로 빠져나간다. 만두는 제자에 그대로 엎드려 있다. 교실에는 이제 사부와 만두뿐이다. 만두가 고개를 든다. 사부는 만두의 모든 동작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힘없이 일어나서 사부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어깨가 축 쳐져 있다. 무엇이 저리도 저 어린 것을 힘없게 한단 말인가? 사부는 스스로 입을 열기 전까지 절대 물어보지 않기로 한다. 저 안에는 말못할 상처, 슬픔이 가득 차 있는 거다.
만두가 사부 앞에 멈춘다.
“전 집에 가져가서 엄마랑 심고 싶어요.”
“아주 멋진 생각인데.”
“......!”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걸 만두는 생각한 거야.”
“......?”
사부는 검은 봉지에 상토를 맨손으로 퍼 담는다. 작은 화분 두 개를 챙긴다.
“한 개는 만두 거고 또 한 개는 엄마 거다.”
만두는 사부가 챙겨 준 상토와 작은 화분을 조심스럽게 만져 본다. 상토는 알갱이가 거칠지만 만질수록 부드럽다. 만져도 손에 묻지 않는다. 약간의 물기가 있어 촉촉하기까지 하다.
만두가 두 손을 펼친다. 옥수수 씨앗을 받을 순간이다. 다른 아이들이 했던 말을 기억한 만두가 마침내 입을 연다. 소곤소곤 건네는 말에 슬픔이 묻어 나온다.
“나의 엄마로 와줘서 고맙고요......!”
만두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만두는 ‘나의 옥수수’ 아닌 ‘나의 엄마’이다. 사부는 만두의 말에 바싹 긴장한다. 토씨 한나라도 놓치면 만두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어렵게 연 만두의 말문은 닫힐 것이다. 마음도 굳게 닫힐 것이 뻔하다.
“잘했어. ‘나의 엄마로 와줘서 고맙고요’ 하고 싶은 말 참지 말고 해 보세요.”
“......반갑고요.”
“반갑고요.”
“나의 엄마로 와줘서 사랑해요.”
“나의 엄마로 와줘서 사랑해요.”
사부는 만두의 말을 차분하게 다시 돌려준다.
만두는 그만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점점 더 울음소리가 커진다.
사부는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는 일, 같은 자세로 앉아주는 것이 만두를 보듬어 주는 거라는 걸 안다. 왜 우는지 물어보지 않는 거다. 실컷 울도록 지켜보는 것, 같이 울어주는 것만이 지금 이 순간에는 할 수 있는 일이다.
만두도 울고, 사부도 같이 울어주고...그렇게 한참 동안의 시간이 흐른다.
마침내 만두가 토해낸다. 가슴에 묻어두고 감당하기 힘들었던 가시들을 뱉어내며 울기 시작한다. 끝없이 흐르는 눈물로 저 어린 가슴에 응어리를 녹여내고 있는 거다.

“엄마는 절 버렸어요. 제가 세 살 때 엄마가 절 버렸다고요.”
만두는 펑펑 운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넘치는 눈물은 콧물로 주르르 흘러내린다. 서러움에 복받쳐 어깨가 들썩거린다. 폭풍 눈물을 삼키려다가 그만 사레가 들려 켁켁거린다.
사부는 만두의 등을 쓸어내린다. 수백 번쯤 쓸어내렸을 즈음, 만두는 훌쩍거리며 조금 진정이 된다.
사부는 만두에게 눈을 떼지 않는다. 바짝 다가앉아 크리넥스 통을 놓는다. 티슈를 한 장 뽑아 건넨다. ‘버렸다고요’ 그 한마디로 다 짐작한다. 엄마를 그리워한 시간이 얼마나 깊었을까? 너무 깊어 도저히 건너기 힘든 강이었을 것이다. 그 물결에 휩쓸린 어린 가슴에 쓰나미가 일고 있는 거다. 독한 가시로 박힌 아픔을, 그리움을, 슬픔을 눈물로 쏟아내고 있는 거다.
“엄마가 죽도록 미웠다고요.”
“......!”
사부는 만두의 손을 꼭 잡는다.
“제 손을 잡아 주기를 기다릴 때마다...엄마가 죽도록 미웠다고요.”
(계속)

20170724_141433_-_복사본.jpg

(세 살 때 버려졌던 만두는 아빠가 키우게 됩니다. 아빠와 만두는 엄마를 찾아가 같이 살자고 몇 차례 애원했지만 엄마는 만두의 친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만두의 아버지는 만두를 남기고 간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만두는 엄마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아빠를 죽인 엄마를 죽이겠다고 다짐합니다. 엄마를 죽이려고 할 때마다 점점 더 힘들어지는 만두는 어떻게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만.두.만.세】 3부는 만두의 열두 살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엄마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만두의 인생 극복 이야기’는 계속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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