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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돈이면 다 되는 세월에 벌초도 탑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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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sd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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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years ago3 min read

이제 돈이면 다 되는 세월에 벌초도 탑승하였다./cjsdns

밭둑을 깎겠다고 이웃집에서 예초기를 빌려 달라기에 챙겨주며 생각하니 벌초 때가 다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벌초는 보통 음력 7월 15일인 백중 이후부터 추석이 들어 있는 음력 8월이 오기 전에 주로 했는데 요즘은 생활 방식이 바뀌다 보니 추석 연휴 전까지 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8월 벌초는 안 하는 거라며 음력 7월 20일경에 많이 했으며 늦어도 7월 그믐 전에는 해야 했다.
어쩌면 일 년 중 조상님들을 위하여 가장 큰일이 벌초였으며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벌초도 대행하는 업체가 많이 생겨서 위탁하는 사람도 많으며 지역 농협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 같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조상 묘지 벌초는 후손들이 모여서 직접 하는 게 좋다고 본다.

예초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어떻게 조상님 묘소를 예초기로 깎냐며 예초기로 벌초를 하면 안 좋은 시선으로 봤는데 이제는 예초기 아니면 벌초를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오히려 벌초 현장에서도 낫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그랬다. 또한 동네 큰 산소라 불리는 지주들 집안 묘지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벌초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풍습이 완전히 사라졌지만 우리 동네 예를 들어보면 50년 전 이전에는 7월 7석 날 온 동네 사람이 다 모여서 뒷동산 큰 산소들을 벌초를 하고 사당 주변까지 정리를 한 다음에 큰제사를 지냈다.

먹을게 귀했던 그 시절에는 제사 후에 나눠주는 떡이며 음식이 동네 어린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먹거리였으며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왜 그리 길게만 느껴졌는지 그때 생각을 하면 어린 시절의 내 모습도 데려 올 수 있다.
지금이야 그런 풍습이 다 사라졌지만 한편 아련하고 그땐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동네 부자는 한두 집이나 두세 집에 불과했고 큰 부자는 오로지 그 집뿐이었다. 동네 토지 대부분이 그 집 것이었다. 그러나 골프장 바람에 조상님 묘지까지 파헤쳐가며 내주더니 몰락해 가는 집안이 되었고 그 많던 토지도 남의 손에 대부분 넘어갔다. 물론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게 있다고 아직도 큰 부자임에는 틀림없으 나 예전에 그런 느낌에 부자는 아니다.

벌초 이야기를 한다는 게 남의 집 이야기로 흘러가니 거시기한데 당시 어린 나이에 막연하지만 부자를 동경했던 것인가 싶기도 하다. 당시는 부자가 된다는 게 엄두도 낼 수 없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일인데 요즘은 부자 아닌 집이 없다. 해 놓고 사는 거, 먹는 걸 보면 어느 집이 되었든 그 당시 최고의 부잣집보다 더 잘해 놓고 산다. 더군다나 주변에 좋은 집들이 들어서니 옛날 모습 그대로 있는 그 집은 정겹게 보이기는커녕 너무 초라해 보이는 게 안타깝기까지 하다.

오늘이 음력 칠월 스무날이다.
아무래도 올해 벌초의 최적기는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 주말이 될 거 같다.
그다음 주말은 8월로 넘어가는데 그래도 추석 전 마지막 주말이라 미처 벌초를 못한 집안에서는 그날 할거 같다.

그러나 이제 벌초 풍습도 사라져 가는 풍습 중에 하나인 듯하다.
장례 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해 가면서 기 매장되어 있는 묘지도 파묘를 해서 화장을 하는 집안이 늘고 있다.
자식들에게 벌초의 의무를 씌우지 않겠다는 생각인데 좋다 나쁘다을 떠나서 서글픈 현실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음력 7월에 전국적으로 펼쳐지는 전통문화 대축제 같았던 벌초, 이제는 기피 문화가 되는 듯하여 아쉽고 대행업체의 출현으로 조상님들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참여하는 고귀한 행위가 비용으로 계산되는 세월이 되었다. 이제 돈이면 다 되는 세월에 벌초도 탑승하였다.

2022/08/17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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