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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부터 압록강까지 22-1-1 낙동강 교두보(포항-대구 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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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domand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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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9월 3일 워커장군은 5개소에서 발생한 아슬아슬한 위기에 봉착
동부포항의 적침투
영천, 대구 북방고지의 탈취
낙동강 북부에서 적 침식
마산에서 미25사단의 고전

한국군 2군단은 붕괴직전의 위기에 봉착
미1기갑 사단도 대구근처까지 철수
남부의 미2, 25사단도 위협을 받는 상황

동부전선 잭슨 특수임무부대

북한군 2군단의 총공격은 9월 22일 계획

병력5천에 불과한 북12사단의 공격이 기계-안강에서 좌절되자 재편성후 재차 공격을 개시
8월 26일 북한군의 공격을 물리친 한국군과 미군은 더 이상 적의 공격이 없을 것이라고 낙관

8월 27일 새벽 0400 북한군이 기계북방에서 수도사단 17연대 1개중대를 격파하자 전연대가 물러섬

우측방의 18연대도 측방위협으로 물러남
17연대는 기계를 포기
전 수도사단이 기계에서 남쪽으로 3마일 철수

8월 27일 워커 장군은 콜터 소장을 미8군 부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미21연대, 미19연대 3대대, 미73 중전차 대대(-C 중대) + 한국군 1군단을 지휘하게 함

콜터 장군은 이 부대를 잭슨 특수임무부대로 명명
지휘본부는 경주 한국군 1군단 사령부

8월 27일 12시부로 잭슨 특수임무부대의 지휘권을 인수

콜터 장군이 경주에 도착했을때 한국군 1군단은 붕괴되어 있었고 사기도 저하

(당시 한1군단은 김홍일 장군이 지휘하고 있었으며 한국군 1군단은 붕괴되었기 보다는 콜터 장군과 김홍일 장군간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이었다는 평가도 있음. 한국전쟁비사(2) 안용현 저 참고)
<당시 김홍일장군과 미군지휘부는 서로 좋지 않은 관계였던 것으로 보임>

“콜터 장군은 하국군 지휘관과 그의 참모들에게 작전실패의 원인과 전 교두보선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였다. 워커 장군은 콜터 장군에게 한국군 1군단장에게 주는 명령은 그들을 고문하는 형식으로 자기 명령을 하달하라고 지시하였다.”

211부터 제1군단장 김홍일 장군과 제3사단장 김석원 장군이 철수를 하려고만 하고 역습을 하지 않으며 했다는 기술을 하고 있으나 통상적인 김홍일 장군과 김석원의 장군의 기질과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음

김홍일 장군과 김석원 장군의 교체 이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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