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0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 다시 김개남을 생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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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째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고 있다. 박근혜 탄핵과정에서 시위를 보면서 대중의 폭발적 힘이 한국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 기대는 문재인 이후 불과 얼마지나지 않아 산산조각났다.
그 이후 구한말에 일어났던 동학혁명을 어떻게 평가하고 인식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면서 혼자 삼례와 우금치를 다녀오기도 했다.
최재우에게 동학은 단순한 종교가 아닌 당시 조선이 처한 현실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종교의 형식을 띤 일종의 정치운동이라는 말이다.
만일 김개남의 말대로 계속 서울로 공격해서 조선을 붕괴시키고 백성의 나라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동학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전봉준이 아니라 김개남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저 자유롭게 데모하고 대통령도 마음먹으면 바꿀 수 있는 것인가? 헌법을 정해놓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인가? 투표를 할 수 있으면 민주주의가 되는 것인가?
수없이 많은 민주투사들은 무엇을 위해 길거리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갔을까? 이재명과 조국 그리고 윤석열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지금의 한국의 대중을 위해 4.19 당시 서울 한복판에서 5.18의 광주에서 사람들은 피를 흘렸고 목숨을 버렸을까 ?
민주주의는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현실적 삶의 개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저 언론의 자유, 투표의 자유와 같은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절차와 제도가 아니라 인민의 삶의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통해 가진자들의 착취를 막아내고 서로 잘 살수 있는 대동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 민주주이이고 그런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동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동학의 핵심세력들이 나중에 친일부역세력이 되었지만 대동사회를 향한 인민의 의지는 여전히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고 하겠다.
박정희의 개발독재에 항거한 것은 그가 오로지 군사독재로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박정희가 국가를 발전시켰지만 그 과실이 인민에게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국가의 역량을 고양시키는데는 성공했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나는 박정희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이후 우리의 역사적 과제는 국가경쟁력을 계속 고양하면서 인민의 삶을 높여 나가는 것이어야 했다.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삶의 고양을 위해 인민의 삶을 향상시켜나가는 질적 개선을 위해 필요했다.
소위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당연한 역사적 사명을 상실하고 만 것 같다. 기득권은 자신의 이익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대중을 착취하는 길을 걸었다. 원래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인민의 이익을 가장 먼저 고려하여야 하나 그러지 못했다. 소위 보수정권의 대통령은 인민의 손에 선출이 되었지만 인민을 버리고 재벌과 기득권의 이익에 봉사했다.
그렇다고 해서 소위 진보정권의 대통령들이 인민의 삶을 고양시키고 산업발전과 인민의 삶의 향상을 조화시키는 일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특히 진보정권의 대통령은 인민보다는 자신의 정치세력을 공고화하는데 더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보수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민을 착취하는 것은 그러려니 한다. 그것이 그들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한국의 재벌과 자본이 박정희시대 대중의 희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최소한의 양심과 국가전체에 대한 사명감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최근 윤석열 정권을 보면서 확신하게 되는 것 같다.
보수세력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소위 진보세력들의 행태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담고 있는 대중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집단적 기득권을 강화해 왔다. 한국이 처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계속 착취되는 대중을 삶을 외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진보세력에 의존하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대중은 진보세력에 완전하게 포획되었다.
인민은 자신들의 지도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그러다 보니 이재명과 조국 그리고 윤석열과 같은 일그러진 영웅에 희망을 거는 얼척없는 짓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보통사람이 조국처럼 입시비리 저지르고 사모펀드 했으면 이미 예전에 잡혀갔다. 보통사람이 이재명처럼 살았다면 이미 예전에 감방행일 것이다. 김건희도 마찬가지다.
탄핵심판을 받아야 하는 윤석열은 민주적인 절차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훼손하고 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길거리에 나서서 박근혜와 윤석열을 탄핵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윤석열이 민주적 절차를 이용해 인민의 의지를 모독하는 것을 참아내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이재명과 조국이 이리저리 법의 심판을 회피하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내가 보는 한국은 지금 심각하고 치명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한국의 경제는 앞으로 계속 하강할 것이다. 한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중국 덕분에 성장했지만 이제는 중국과의 경쟁력 약화로 쇠퇴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가 직면한 경쟁력 약화라는 위기는 중국에게 혹은 미국에게 적대적으로 대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산업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때 이런 말도 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이냐 윤석열이냐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사실 더 큰 위기는 경제적 위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의 본질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에 있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김개남을 곰곰히 생각한다. 새로운 질서는 완전한 파괴가 있어야 가능한 것 같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힘없는 개인의 희망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대동사회를 여는 것도 핵심적인 엘리뜨의 몫이 아닌가 한다. 한국의 비극은 대동사회를 열어야 하는 엘리뜨가 부패했다는 것이다.
결국 대중의 각성이 필요한데 그것은 그들이 완전하게 추락하고 비극이 피부에 닿아야 가능할 것이다. 이미 비극은 우리 머리 위를 둘러싸고 있다.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 막을 방법이 없다.
일전의 여행시 김개남의 허묘를 지나왔던 것이 후회된다. 다음에 다시가면 술한잔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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