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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분노와 보편적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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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stone
83
18 days agoSteemit2 min read

분노는 인간사회 발전의 근원이다. 부당함과 불공정에 대한 분노, 강자의 약자착취에 대한 분노와 같은 것들이 인간사회를 발전하게 만들었다. 한때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성공하는 것은 쓰레기장에서 장미가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만큼 희망이 없다고하는 말도 있었다. 그랬던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인민의 분노 때문이었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분노는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요즘들어 우리의 분노가 과연 정당하고 보편적이며 합리적인가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그런 현상은 문재인 정권에 들어 심해졌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정권과 권력에 대한 우리의 분노는 정당했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분노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회의를 하게 된다.

권력자들은 인민의 분노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인민의 분노를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몰아가면서 이용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알면서도 권력에 부역하기 위해 조작된 분노에 동참했다. 권력이 제시하는 분노는 부당한 경우가 많다.

정당한 분노는 권력의 조작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당한 분노는 인민의 가슴속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한 분노는 본능의 영역에 속한다. 내가 여기서 분노하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가 무너지고 내 삶의 기반이 허물어진다는 위기감과 함께 발현되는 분노는 대개 정당하다.

그러나 방향을 이끌어가면서 조작하는 분노는 정당하지 않다. 대부분의 작위적 분노가 여기에 속한다. 작위적 분노는 보편적이지 않다. 인민은 항상 분노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조작된 분노도 상당한 수준의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작적인 분노는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역풍이 분다.

만일 조작된 분노가 지속되면 공동체에 씻을 수 없는 형벌을 내린다. 나찌가 역사적인 예라고 하겠다

문재인 정권들어 분노를 조작하고 만들어냈다. 일본, 토착왜구를 이용해서 그리고 적폐청산을 통해 인민의 분노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문재인이 지금처럼 식물정권과 같은 상황에 처한 것도 인민의 정당한 분노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분노가 정당하려면 당파성을 벗어나야 한다. 조국과 이재명에 대한 분노는 마땅히 윤석열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분노는 불편부당해야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재명에게 분노했던 그 이유는 윤석열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이재명에 대한 분노가 윤석열에 대한 옹호로 바뀌어서는 안된다. 조국과 이재명에게 분노했던 만큼 윤석열에게도 분노해야 한다.

최근 윤석열과 그 주변의 행태를 보면 벌써 선택적 분노의 경향이 보인다. 윤석열에게는 관대하고 조국과 이재명에게 엄격한 분노는 틀린 분노이며 편파적인 분노다.

이미 이재명은 죽은 목숨이다. 이재명이 밉고 싫다고 해서 윤석열에 대한 정당하고 보편적인 분노를 거둔다면, 조국과 이재명에 대한 분노도 정당하지 않다.

나쁜 놈은 네편 내편할 것없이 그냥 나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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