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동지였습니다. 올해가 노동지라 팥죽을 쑤어야 하는데 팥죽 쑬 엄두도 못내고 어수선하게 지내는데 이웃에서 점심에 통 하나 들고 오라고 합니다. 팥죽을 담아주면서 식기전에 얼른가서 먹으라고 합니다.
팥죽 그릇을 들고 오면서 왠지 모를 서러움 같은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옵니다. 동짓날이면 아침부터 가마솥에 팥죽을 쑤어 온 집안이며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던 엄마 생각이납니다. 언제나 어른들도 뜨근한 팥죽을 한 그릇 드시고 더 드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도 새알심을 건져먹으며 팥물이 묻은 입을 동그랗게 만들며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언제나 떠들썩한 집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우리 세식구 먹을 팥죽도 준비를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세 식구 앉아서 먹는 동지 팥죽 맛을 어디에 비길 수 없습니다. 평소 자주 만나고 살아서 그런지 제 입장도 헤아리고 평소 잘 챙겨주는 언니입니다.
저녁이 되자 가게 마감을 하고 있는데 또 차가 한 대 섭니다. 누군가 하니 너무나 친하게 지내는 분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차에서 내립니다. 점심에 팥죽도 같이 못 먹어 일부러 또 쑤어가지고 오셨다고합니다. 도토리묵에 양념 간장까지 곁들여 어두운 시간을 달려오신 정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무슨 복으로 올 해는 두 집에서 챙겨준 동지를 지냈습니다.
사위라고 자기가 백년 손님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건만 그렇게 팔을 걷고 궂은 일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품성도 너그럽거니와 아무래도 새식시가 너무 예뻐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모름지기 각시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런거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오래전 이웃에 사시던 분이 늘 우리 어머니를 부러워했습니다. 그집 할매는 무슨 복에 며느리 손에 밥을 얻어먹고 사느냐고, 당신은 팔자가 기구해서 자식 다섯을 낳도록 미역국 한 그릇도 못 얻어먹었는데 나중에 시어머니 병구환을 십년도 넘게 했는데 이제와서 며느리 밥도 못 얻어먹고 사신다며 신세한탄을 하셨습니다.
뼈 빠지게 벌어 자식 공부 시켜본들 저희들끼리 살면서 부모 생각은 꿈에도 없다며 한탄을 하는데 그 한탄이 늘어져 이번에는 딸들로 이어집니다. 큰 딸은 멀리 시집을 가서 가물에 콩 나듯 목소리나 한 번 들으면 그 뿐이고 가까운데 사는 딸은 뭘 못 닮아 어미 팔자를 닮아 시집살이 하느라 친정 걸음도 못하고 산다고 합니다.
어쩌다 한 번 보는 사위는 훈장질을 하다 왔는지 아랫목에 앉으며 일어날 줄을 모른다며 박복한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아마 그 사위가 오늘 등장하는 사위처럼 어울려 사는 사람이었으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대문을 그려주신 @ziq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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