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없는 버스,
웃기고 있다. 서울시는 이 정책이 자리잡았다 상찬하고 인천시는 뭐가 좋다고 이를 따라하고 있다. 이것이 자리잡았다 말하는 근거는, 현금 승차에 따른 불편 호소가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데이터란 민원을 말한다.
하지만 작년에 두 건 정도, 그리고 오늘도 내가 현금을 받고 다인 승차 결제를 했던 경험이 있다. 아마도 청소년들은 더 심할 것이다. 대개의 경우 친구들이 대신 내주겠지.
이런 식으로 화폐를 거절하는 결제를 정책적으로 밀어붙인다. 아마 이들은 왜 일본 등의 나라에서 현금 승차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정류장 마다 긴급하게 충전할 수 있는 수단에 없다면 지불 방식에 따른 차별을 만들어 내는 것과 진배 없다.
이 정책의 가장 고약한 측면은 ‘아니 왜 현금승차가 안 돼!’라는 당연한 불만을 ‘내가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네’라는 자책의 구조로 만든다는 데 있다. 나는 이게 너무 열받는다. 조금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권리화하는 반면 없는 사람들은 너무나 빠르게 내 탓을 한다. 왜 이런 정책을 하는가.
진짜 이런 정책 만든 사람에게 묻고 싶다.
희화화의 당사자인 일본인들이 웃고 있으니 다나카의 개그는 혐오가 아닌 걸까? 일본인 전체가 아닌, 호스트클럽이 합법인 일본인을 설정으로 특징을 모사한 것이니 제노포비아까지 이야기하는 건 과도한 확대해석일까? 혐오를 판단하는 기준은 문화권, 교육수준, 감수성, 가치관 등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영방송마저 별 고민 없이 다나카 열풍에 편승하고 있는 이때, ‘이 개그, 그대로 소비해도 되나?’라는 사회적 브레이크만은 그저 반갑게 맞이해도 좋지 않을까.
터치패드가 커진건 좋은데 자꾸 손가락 피부에 붙어서 지문방지필름을 붙여야 하나 싶네요...